“나는 이런 사람이야”의 덫: 나답게 살려다 오히려 나를 잃었다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나는 이런 사람이야”의 덫: 나답게 살려다 오히려 나를 잃었다
![]() |
“나는 이런 사람이야”의 덫: 나답게 살려다 오히려 나를 잃었다 |
자신을 설명하고 정의하는 일은 자존감과 연결되기도 하지만, 때론 우리를 고정된 틀 안에 가두는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나다움에 집착할수록 오히려 나를 잃어가는 아이러니. 정체성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3가지 실험적 방법을 함께 살펴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의 함정
우리는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늘 습관처럼 몇 가지 말들을 꺼냅니다. “저는 ENFP예요.” “마케팅 회사에서 일해요.” “요가를 좋아해요.”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이런 정보들은 짧은 시간 안에 나를 설명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정체성’을 씁니다. 하지만 어느새 그 정체성은 우리를 설명하는 도구를 넘어서, 우리를 규정하고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야.” “나는 완벽주의자야.” “나는 나답게 살아야 해.”
이런 문장들은 처음엔 스스로를 이해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정의가 굳어지면, 우리는 ‘이래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정체성은 때로 우리를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우리가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 되기도 합니다.
나를 규정하는 말들, 그 안에 숨어 있는 위험
1. 정체성은 자신감을 주지만 동시에 경직된 틀이 된다
“나는 능력 있는 사람이야.”라는 믿음은 어려운 상황에서 용기를 줍니다. “나는 타인을 돕는 사람이야.”라는 자각은 더 다정한 행동을 끌어냅니다. 긍정적인 정체성은 삶에 유의미한 방향성과 태도를 만들어 주죠.
하지만 인간의 뇌는 일관성을 추구합니다. 한 번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면, 그 정의에 어긋나는 감정이나 행동을 억압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야’ →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고 연기함
- ‘나는 독립적인 사람이야’ → 도움을 요청하는 데 불편함을 느낌
- ‘나는 완벽주의자야’ →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자기 비난에 시달림
- ‘나는 나답게 살아야 해’ → 끊임없이 ‘나다움’을 검열하고 강박적으로 유지
정체성은 처음엔 자유를 주지만, 어느 순간 그 자유를 제한하는 족쇄가 되곤 합니다.
2. 뇌는 변화보다 일관성을 선호한다
심리학적으로도 우리는 스스로의 ‘자아 정체성’과 충돌되는 행동을 할 때 불편함을 느낍니다. 이른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현상인데, 이 때문에 우리는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를 선택하게 됩니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자 다니엘 길버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는 잘 보지만, 앞으로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는 잘 보지 못한다."
사람은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변화한 점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이제 다 컸다, 나는 이렇다”고 단정 지으며 변화 가능성을 닫아버립니다. 문제는 이 고정된 정체성이 삶의 유연성을 심각하게 저해한다는 점입니다.
3. 정체성은 관계에서의 역할마저 고정시킨다
주변 사람들이 “넌 이런 애잖아”라고 인식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이미지에 맞춰 살게 됩니다.
- “넌 늘 밝잖아” → 슬픔을 표현하지 못함
- “넌 일 잘하잖아” → 실패나 실수에 과도한 압박
- “넌 자존감이 높잖아” → 불안이나 우울을 드러내기 어려움
타인의 기대와 나의 이미지가 뒤섞이면서, 우리는 더 이상 나다운 나로 살지 못합니다. 이런 고정된 역할 속에선 진짜 감정도, 진짜 가능성도 쉽게 억압됩니다.
4. 실제로 사람은 끊임없이 변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 진짜일까요? 10년 전, 혹은 5년 전의 나를 떠올려보세요.
- 그때 좋아하던 음식과 지금의 취향은 같은가요?
- 절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일을 지금은 자연스럽게 하고 있진 않나요?
- 그때 가장 가까웠던 친구는 지금도 자주 만나고 있나요?
우리는 순간순간의 경험과 관계 속에서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진짜 나’라는 건 어쩌면 그때그때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의 모습일 뿐, 고정된 실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정체성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3가지 방법
우리가 진짜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자기 자신을 규정짓는 언어에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나다움’을 너무 단단하게 붙잡지 말고, 그마저도 유동적인 것이라 인정해봅시다.
첫째, 내 안의 모순을 받아들이기
사람은 하나의 성격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떤 날엔 외향적이고, 또 어떤 날엔 내향적일 수 있습니다. 부지런할 때도, 게으를 때도 있습니다. 이런 모순은 결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입니다. 모순된 감정과 태도를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것이, 더 진짜 나에 가까워지는 길입니다.
둘째, 명사가 아닌 ‘동사’로 나를 설명하기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고정된 문장 대신 “나는 지금 이러할 때가 있어”라고 바꿔보세요.
- 나는 완벽주의자야 → 나는 실수하지 않으려 애쓸 때가 많아
- 나는 내향적이야 → 낯선 자리에서 말수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어
이런 표현은 변화와 성장의 여지를 남겨둡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에 ‘고정’되어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셋째, 실험하듯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나는 이런 거 안 좋아해.” “나는 이런 걸 안 해.” 이런 말들, 진짜 경험해본 후에 한 말일까요?
우리가 좋아하거나 싫어한다고 느끼는 건 대부분 경험이 아닌 선입견에 기반합니다. 경험해보지도 않고 나를 제한하지 마세요. 때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나를 정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변화하는 사람이며, 새로운 감정과 가능성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정체성을 정의하려는 욕망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 대신, “나는 지금 이러할 때가 있어”라고 말해보세요.
세상과 나를 향한 시선이, 조금은 더 부드러워질지도 모릅니다.
#정체성 #나다움 #자기이해 #심리학블로그 #나를알기 #자아정의 #개인의성장 #변화하는나 #심리글 #한스블로그